전북 부안의 한 농협 창고가 쌀보리와 맥주보리로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찼습니다. 겉으로 보면 풍년의 넉넉한 풍경이지만 정작 농가의 표정은 밝지 않습니다. 올해 보리 농사가 크게 늘어 대풍을 이뤘음에도, 값이 크게 떨어지면서 늘어난 생산량이 오히려 농민들의 시름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부안 농협이 올해 사들인 보리 수매량은 약 천오백여 톤으로, 지난해의 세 배가 넘습니다. 생산이 급격히 늘면서 가격은 곤두박질쳤습니다. 사십 킬로그램들이 한 가마 가격이 삼만 삼천 원으로, 지난해의 삼분의 일 수준까지 폭락한 것입니다. 물량은 세 배로 불었지만 손에 쥐는 값은 오히려 크게 줄어든 셈입니다.
생산 통계에서도 올해의 과잉 생산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올해 쌀보리 생산량은 십삼만 오천 톤으로 집계돼 지난해보다 사십칠 퍼센트나 늘었고, 이는 이천이십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입니다. 올해 들어 보리 재배 면적이 급증한 것이 생산량이 크게 불어난 주된 원인으로 꼽힙니다.
문제는 이렇게 늘어난 물량을 소화할 판로가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보리는 주로 소주와 맥주 등 주류의 원료로 쓰입니다. 그러나 대량으로 쏟아진 국산 보리를 안정적으로 받아줄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아, 창고에 쌓인 물량이 그대로 농가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판로가 좁아진 배경에는 원료 시장의 구조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보리를 사들이는 업체들이 상대적으로 값이 저렴한 외국산 보리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산 보리가 대풍을 이뤘더라도 가격 경쟁에서 밀리면 판로를 확보하기가 한층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여기에 통상 환경의 변화까지 겹치면서 농가의 시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미국과 캐나다산 보리에 매겨지던 관세마저 사라졌습니다. 값싼 수입 보리가 더욱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면서, 국산 보리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느끼는 위기감은 한층 커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