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팔리지 않은 제품을 그대로 폐기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유럽연합은 미판매 제품을 폐기하는 행위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을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일부 기업이 재고를 처리해 온 방식에 직접 손을 대는 조치로, 특히 패션 업계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재고 처리 관행이 크게 바뀌게 될 전망입니다. 패션 업계의 오랜 재고 처리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조치입니다.
이번 규정은 지난 십구 일부터 효력을 갖게 됐습니다. 핵심은 팔리지 않은 의류와 신발을 폐기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일부 업체는 브랜드의 희소성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팔리지 않은 제품을 시장에 풀지 않고 소각하거나 파괴해 왔는데, 앞으로는 이런 방식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게 됐습니다. 재고를 없애기 위해 태우거나 부수던 관행 자체가 규제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남은 재고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새 규정에 따르면 유럽의 기업들은 팔리지 않은 제품을 소각하거나 매립하는 대신, 할인 매장에서 다시 팔거나 대체 유통망을 통해 판매해야 합니다. 그것도 어렵다면 자선단체 등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사회에 되돌려야 합니다. 폐기라는 손쉬운 선택지 대신, 어떻게든 다시 쓰이도록 하는 것이 원칙이 된 셈입니다.
다만 모든 폐기가 무조건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규정은 몇 가지 예외적으로 폐기가 허용되는 경우를 두고 있습니다. 우선 제품 안전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이에 해당합니다. 또 지식재산권을 침해한 제품, 이른바 짝퉁 제품은 폐기가 가능합니다. 아울러 기부를 하려 했지만 자선단체가 이를 받지 않겠다고 한 경우에도 예외적으로 폐기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겼습니다.
예외를 인정받아 폐기를 하더라도 기업의 부담은 남습니다. 규정에 따라 기업들은 매년 얼마나 많은 재고가 발생했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 얼마나 폐기했는지를 보고서를 통해 공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재고와 폐기 규모가 투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만큼, 기업으로서는 애초에 과잉 생산을 줄이고 재고를 최소화하려는 압박을 함께 받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재고 관리 자체에 대한 부담이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이번 조치의 배경에는 갈수록 심각해지는 의류 폐기물 문제가 있습니다. 이른바 스파 브랜드처럼 값싸게 옷을 빠르게 사고 몇 번 입지 않고 버리는 소비가 늘면서 의류 쓰레기도 크게 늘어 왔습니다. 여기에 팔리지 않은 새 제품까지 대량으로 소각되거나 매립되면서 자원 낭비와 환경 부담이 커진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고, 이번 규정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적용 시점에는 기업 규모에 따라 차이를 뒀습니다. 대기업에는 규정이 곧바로 적용되지만, 상대적으로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는 사 년의 유예 기간이 주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의 경우 이천삼십 년부터 같은 규정을 적용받게 됩니다. 유럽연합이 폐기 대신 재활용과 재판매를 앞세운 이번 규정을 통해 패션 업계의 재고 처리 문화를 어디까지 바꿔 놓을지 주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