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가 스위스에 본사를 둔 글로벌 펩타이드 위탁개발생산 기업 폴리펩타이드 그룹을 인수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런 내용을 공시를 통해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번 인수에 투입되는 금액은 약 이 조 칠천억 원에 이르며, 이는 국내 바이오업계에서 이뤄진 인수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그동안 국내 바이오 기업이 해외 기업을 사들이는 사례가 없지 않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대형 인수는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만큼 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수는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폴리펩타이드 그룹의 대주주가 가진 지분을 사들이는 동시에, 공개매수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지분을 끌어모으기로 했다. 최종적으로는 폴리펩타이드 그룹의 지분을 백 퍼센트까지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인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대주주 지분 인수와 공개매수를 함께 활용하는 것은, 회사를 완전히 자회사로 편입해 경영을 온전히 장악하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인수 대상인 폴리펩타이드 그룹은 펩타이드 분야에 특화된 글로벌 위탁개발생산 기업이다. 위탁개발생산은 제약사의 의뢰를 받아 의약품을 대신 개발하고 생산해주는 사업으로, 흔히 영문 약자로 씨디엠오라고 불린다. 신약을 직접 파는 대신 여러 제약사의 생산을 도맡아주는 구조여서, 특정 신약의 성패에 좌우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폴리펩타이드 그룹은 이런 위탁생산 가운데서도 펩타이드라는 특정 영역에서 강점을 지닌 기업으로 꼽힌다.
이번 인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사업 지형을 한 단계 넓히는 결정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그동안 항체 의약품을 중심으로, 메신저 리보핵산과 항체 약물 접합체 등으로 위탁생산 영역을 넓혀 왔다. 여기에 이번 인수를 통해 펩타이드라는 새로운 축이 더해지게 됐다. 기존에 다뤄 온 의약품 형태에 더해 펩타이드 생산 역량까지 갖추게 되면서, 제약사들이 맡길 수 있는 생산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지는 셈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펩타이드로 눈을 돌린 배경에는 이 분야의 수요가 빠르게 커지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펩타이드는 최근 비만과 당뇨 치료를 이끄는 이른바 지엘피 계열 치료제의 핵심 기술로 꼽힌다. 세계 주요 제약사들은 비만과 당뇨 치료 영역을 넘어, 항암제와 면역질환, 뇌질환 치료제 분야에 이르기까지 펩타이드를 활용한 의약품 개발을 넓혀가고 있다. 글로벌 비만 치료제 시장은 이천삼십오 년에는 최대 이백 조 원 규모까지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이런 흐름에 발맞춰, 비만약을 비롯한 펩타이드 의약품의 생산 수요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이번 인수를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 측은 이번 인수의 의미를 세 가지 성장의 축으로 설명했다. 대표이사는 이번 결정이 생산 능력과 사업 포트폴리오, 그리고 글로벌 거점이라는 세 가지 성장축을 모두 아우르는 전략적 판단이라고 밝혔다. 생산 능력을 키우는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의약품의 종류를 넓히고, 해외에 거점까지 확보하는 효과를 한 번의 인수로 함께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회사는 이를 통해 기업 가치와 주주 가치를 모두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 인수가 마무리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글로벌 위탁개발생산 시장에서의 입지를 한층 넓히게 된다. 폴리펩타이드 그룹은 유럽과 미국, 인도 등 다섯 개국에 여섯 개의 생산 거점과 연구개발 시설을 갖추고 있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번 인수로 생산 시설과 기술, 전문 인력을 한꺼번에 확보하게 됐다. 회사는 이번 인수를 발판으로 세계 위탁생산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국내 바이오업계 역대 최대 규모라는 상징성과 함께, 항체 중심에서 펩타이드로 생산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이번 인수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으로 인수 절차가 계획대로 진행될지, 또 펩타이드 사업이 실제 성과로 이어질지가 관심사로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