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첫 근대식 미술관인 간송미술관의 정문을 오랜 세월 지켜온 돌사자상 한 쌍이 고향인 중국으로 돌아가게 됐습니다. 서울 성북동 언덕길 안쪽에 자리한 간송미술관 입구에는, 앞발을 들고 포효하는 듯한 모습의 사자 석상 한 쌍이 마주 보고 서 있습니다. 미술관을 상징하다시피 해온 이 돌사자상이 제자리를 찾아 중국으로 향하게 되면서, 오랜 인연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습니다.
이 돌사자상은 그 자체로도 존재감이 상당합니다. 높이는 일 점 구 미터에 이르고, 무게는 하나에 일 점 이오 톤에 달합니다. 묵직한 몸집으로 미술관 앞을 지켜온 세월만 팔십칠 년에 이릅니다. 구십 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자리에서 미술관을 드나드는 이들을 맞이해 온 만큼, 간송미술관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의 일부이기도 했습니다. 성인 키를 훌쩍 넘는 크기의 석상 한 쌍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미술관을 찾는 이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겨 왔습니다.
돌사자상이 우리나라에 오게 된 것은 간송 전형필 선생의 손을 거치면서였습니다. 천구백삼십삼 년, 전형필 선생은 일본의 경매 시장에서 고려와 조선의 유물을 되사오던 길에 이 돌사자상도 함께 사들였습니다. 일제강점기, 해외로 흩어진 우리 문화재를 되찾는 데 애썼던 그의 노력 속에서 이 사자상 역시 그의 소장품으로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 유물을 지키려던 발걸음이 뜻밖에 중국의 석상까지 함께 품게 된 셈입니다.
하지만 이 사자상의 고향은 조선도, 그것이 팔려 나왔던 일본도 아니었습니다. 원래 이 돌사자상은 중국 청나라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전형필 선생은 천구백삼십팔 년 간송미술관을 세우면서 이 돌사자상을 미술관 앞에 두었고, 이후 사자상은 오랜 세월 미술관의 얼굴처럼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조선의 유물과 함께 건너온 중국의 석상이 한국의 미술관을 지키는 독특한 인연이 이어져 온 셈입니다.
그런 돌사자상이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데에는 간송 전형필 선생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의 문화재는 중국에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 선생의 생각이었고, 이번 반환은 그 뜻을 따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선생이 직접 값을 치르고 사들인 문화재임에도, 그 유물이 있어야 할 제자리를 찾아주기로 한 것입니다. 소유의 권리보다 문화재가 지녀야 할 본래의 자리를 앞세운 결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릅니다.
이번 돌사자상의 반환은 단순히 오래된 석상 하나가 자리를 옮기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남의 나라 문화재라 하더라도 제자리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원칙을,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데 평생을 바친 인물의 뜻으로 실천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큽니다. 오랜 세월 간송미술관을 지켜온 사자상이 떠난 자리에는 아쉬움이 남겠지만, 문화재가 제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이 던지는 울림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