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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신 엄흥도 묘 진위 논란, 영월 향토사학회 비석 근거로 반박

충신 엄흥도 묘 진위 논란, 영월 향토사학회 비석 근거로 반박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흥행 이후 재조명된 충신 엄흥도의 영월 묘를 두고, 실제 묘는 대구 군위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영월 향토사학회는 영조 때 세운 비석과 옛 기록을 근거로 이 주장을 반박하고 있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하면서 다시 주목받은 충신 엄흥도의 묘를 두고 진위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강원도 영월에 있는 묘가 실제 엄흥도의 묘가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지역 사학계가 이를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엄흥도는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뒤, 가문이 멸문지화를 당할 것을 두려워해 숨어 살았다고 전해지는 인물입니다. 영화를 통해 그의 충절이 재조명되면서 그의 묘소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졌습니다.

엄흥도의 아들들은 이후 경북 문경과 대구 군위, 울산 울주 등으로 흩어져 집성촌을 이뤘습니다. 그런데 지난 10여 년 사이, 엄흥도의 실제 묘가 현재의 영월이 아니라 대구 군위에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이에 대해 영월의 향토사학회는 영조 때 세운 비석만 보더라도 이 같은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반박합니다. 현재 영월 엄흥도 묘역의 비석에는 1726년, 영조 2년에 영월부사 윤양래가 쓴 비석문이 남아 있습니다.

이 비석문에는 엄흥도의 후손들이 뿔뿔이 흩어졌지만 제사가 끊이지 않았고, 그 묘소는 팔괴, 즉 지금의 영월읍 팔괴리에 있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묘의 위치를 직접 가리키는 기록인 셈입니다.

영조 15년인 1739년에 세워진 둘째 아들 엄광순의 묘비에도, 아버지 엄흥도를 팔괴에 장사 지낸 뒤 화가 두려워 영남으로 피신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같은 해 승정원일기에도 엄흥도의 자손을 관직에 등용해야 한다는 기사와 함께, 영남으로 옮겨 간 자손들이 본토인 영월을 오가며 묘를 돌봐 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향토사학회는 논란이 불거진 만큼 문화유산을 지역의 자산으로 만들기 위한 영월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모처럼 지역에 찾아온 관심과 활기를 지속적인 동력으로 이어가기 위해, 이를 문중만의 일로 둘 것이 아니라 지역 전체가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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