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가 불안할 때마다 주유소 기름값이 들썩였고, 얼마 전에는 쓰레기 종량제 봉투가 부족할 수 있다는 걱정까지 나왔습니다. 그때마다 원유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실제로 호주산 석유가 오늘 인천항에 입항하면서, 공급망 다변화가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났습니다.
인천 북항에 입항한 것은 십일만 톤급 대형 유조선입니다. 이 유조선에는 고품질 원유인 초경질유 삼십만 배럴이 실렸습니다. 배에 실린 원유는 긴 배관을 통해 약 칠 킬로미터 떨어진 시설로 투입돼 본격적인 정제 작업을 거치게 됩니다. 이 과정을 통해 플라스틱과 비닐의 핵심 원료인 나프타를 비롯해 휘발유와 항공유 등이 만들어집니다.
이번 원유의 고향은 중동이 아닌 호주입니다. 열흘 전 호주 북서부 바로사 가스전에서 가스를 뽑아 올릴 때 함께 나온 원유를 모아 처음으로 국내에 가져온 것입니다. 가스전에서 부수적으로 생산된 원유를 확보해 들여왔다는 점에서 기존의 중동산 원유 수입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이 바로사 가스전은 SK이노베이션 이엔에스가 이천십이년부터 직접 탐사해 생산해 온 곳입니다. 민간 기업이 해외 가스전을 직접 개발해 초경질유를 국내로 가져온 것은 이번이 첫 사례입니다. 국내 기업이 해외 자원 개발을 통해 원유를 확보하는 새로운 방식이 실제 물량으로 이어졌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는 중동보다 가까운 곳에서 이십 년간 매년 원유 백십만 배럴과 엘엔지 백삼십만 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게 됐습니다. 운송 거리도 크게 짧아집니다. 중동에서 원유를 들여올 때는 사십 일 정도가 걸리는 데 비해, 호주에서 들여오는 원유는 약 십 일 정도면 도착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원유의 육십구 퍼센트, 나프타의 칠십삼 퍼센트를 중동에 의존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천구백칠십년대 오일 쇼크부터 걸프전, 그리고 최근 미국과 이란의 충돌까지 중동 정세가 흔들릴 때마다 국내 자원 수급 상황도 함께 요동쳤습니다. 원유 도입선을 넓혀야 한다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배경입니다.
공급망 다변화 움직임은 다른 기업들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GS칼텍스는 이십 년 만에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들여와 시험하고 있고, HD현대도 북중미와 남미산 원유 수입 확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동안 중동산 중질유에 맞춰 설계된 정유 시설을 다른 지역의 원유에 맞게 전환하는 일은 정부와 업계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