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을 두고 지난 정부와 뚜렷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정 장관은 취임 일 주년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부의 대북 접근 방식에 대해 지난 정부의 선비핵화론을 사실상 폐기하고 선평화론으로 전환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비핵화를 먼저 이룬 뒤에야 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는 기존 기조를 접고, 평화를 앞세우는 쪽으로 정책의 무게 중심을 옮겼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정 장관이 이런 전환의 배경으로 든 것은 대화의 순서 문제였습니다. 그는 북한과 대화를 잇는 것이 먼저인데, 대화의 입구에 선비핵화를 갖다 놓으면 과연 대화가 되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비핵화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면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기 어렵고, 결국 대화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화의 문턱을 낮춰야 실질적인 접촉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이번 정책 전환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셈입니다.
정 장관은 북한의 핵 능력이 지금 이 순간에도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 시각에도 북한의 핵무기 증강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며, 당장 실현이 불가능한 북한 비핵화보다는 핵 동결이 시급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당장 달성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우선 핵무기가 더 늘어나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는 현실론을 내세운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통일부는 구체적인 접근 방식을 함께 설명했습니다. 통일부는 북한이 비핵화 이전이라도 핵무기 생산을 우선 중단하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제공해 주는 방식의 현실적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북한이 먼저 핵 생산을 멈추는 단계적 조치를 취할 경우, 정부가 그에 맞춰 대응 조치를 내놓는 상호적 방식을 통해 핵 동결을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입니다.
정 장관은 이러한 핵 동결을 실현하기 위한 여건 조성에도 방점을 찍었습니다. 그는 한반도 평화 체제 논의에 우선 착수해 북핵 중단의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핵 문제만 따로 떼어 압박하기보다는, 한반도 전체의 평화 구조를 먼저 논의하는 과정에서 북한이 핵을 멈출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입니다. 평화 논의와 핵 동결을 맞물려 추진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담긴 대목입니다.
남북 관계의 틀에 대해서도 정 장관은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의 이행 전략으로 통일 지향의 평화적 두 국가 관계를 제시했다며, 이는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론을 극복하는 남북 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북한이 내세운 적대적 성격의 두 국가론과 달리, 통일을 지향하면서도 평화롭게 공존하는 관계를 설정함으로써 그 대립 구도를 넘어서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입니다.
한편 정 장관은 기자간담회에 앞서 북한학 전공자들을 초청한 간담회를 따로 열고, 북한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대한 지원 의지도 내비쳤습니다. 그는 북한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 방침을 언급하며, 관련 연구 기반을 넓히겠다는 뜻을 나타냈습니다. 대북 정책의 방향 전환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연구와 전문 인력 육성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