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가족을 위해 증거를 인멸해도 처벌하지 않는 친족 간 특례 규정을 손질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현직 경찰 간부인 아버지가 아들의 형사사건 핵심 증거를 없앴는데도 곧바로 제재하기 어려운 현실이 드러나면서, 오래된 제도를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제기된 것입니다.
이번 논란은 한 여고생 살해 사건에서 비롯됐습니다. 이 사건으로 구속된 피의자 장윤기 씨의 아버지는 현직 경찰 신분으로, 아들이 구속된 직후 아들의 원룸을 찾아가 범행과 관련된 핵심 증거를 챙겨 없앤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수사 대상이 되어야 할 증거가 수사기관이 아닌 피의자 가족의 손에 먼저 사라진 셈입니다.
검찰의 보완 수사 과정에서 아버지가 없앤 것은 아들 명의의 휴대전화와 성인용 인형 등으로 파악됐습니다. 이 물품들은 범행 동기와 성범죄 의혹을 입증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졌지만, 압수수색 이전에 사라지면서 사건의 실체를 규명할 단서가 상당 부분 훼손됐습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입건되지 않았습니다. 현행 형법은 타인의 형사사건 증거를 인멸한 경우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친족이 가족을 돕기 위해 증거를 인멸하거나 범인을 숨겨준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 친족 간 특례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행위가 이 특례의 적용을 받은 것입니다.
핵심 증거가 사라진 여파는 본 사건 수사에도 그대로 미쳤습니다. 경찰은 당초 주거지 압수수색에서 해당 증거들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강간살인이 아닌 일반 살인 혐의를 적용해 피의자를 검찰에 넘겼습니다. 증거 인멸이 혐의 적용의 폭까지 좁힌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 장관은 어젯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현직 경찰관인 아버지가 중요 증거를 인멸했음에도 곧바로 제재하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하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면서 가족 간 절도나 사기 범죄의 처벌을 면제해 주던 친족상도례 규정이 지난해 12월 폐지된 점을 언급하고, 이 특례 역시 개선할 부분은 없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친족 간 특례는 가족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형사처벌의 예외를 인정해 온 오래된 제도입니다. 그러나 이번처럼 법 집행을 담당하는 경찰 신분의 가족이 특례에 기대 증거를 없앨 경우 사건의 진실 규명과 사법 정의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제도의 취지와 한계를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