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쇼난 아이파크 '이노베이션 타이거 2026'에서 89개 팀 중 1위를 차지한 빌릭스의 빌리루빈 기반 신약 개발 여정과 2029년 IPO 로드맵을 분석한다.
심장 수술을 마친 환자들이 직면하는 가장 무서운 적은 감염이나 출혈이 아닙니다. 칼자국이 아물어가는 동안 신장이 조용히 멈춰버리는 급성신손상이죠. 국내 바이오텍 빌릭스는 이 치명적인 합병증을 막기 위해 몸속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빌리루빈을 신약으로 만드는데, 물에 전혀 녹지 않는 이 색소의 물리적 한계를 기술로 무너뜨리는 것이 프로젝트의 핵심 과제입니다.
이 고된 시도가 2026년 9월 15일 일본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의 쇼난 헬스 이노베이션 파크에서 빛을 봤습니다. 한국, 일본, 대만에서 모인 89개 팀 중 빌릭스는 1위를 차지하며 300만 엔(약 2,500만 원)의 상금을 거머쥐었으며, 2위와 3위를 한국 기업인 프레이저테라퓨틱스와 큐로젠이 나눠 가지는 이례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현장의 기립박수 뒤에 숨겨진 것은 단순한 축하가 아니라, 빌릭스가 글로벌 무대에서 기술력을 입증받았다는 냉정한 팩트입니다.
89개 팀 중 1위, 글로벌 제약사들의 날카로운 심사
심사위원 명단을 보면 이번 대회의 무게가 실감 납니다. MSD, 베링거인겔하임, 다케다제약 등 전 세계 제약업계를 움직이는 7개 사의 전문가들이 '타이거'라는 별명답게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죠. 팀별 6분 발표와 6분 질의응답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빌릭스는 빌리루빈 신약의 작용 원리와 개발 현황을 명확히 보여줘야 했고, 그들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김명립 대표가 꼽은 심사위원들의 핵심 관심은 약물화 기술의 완성도와 임상 진전입니다. 특히 임상 2a상 초기 코호트에서 확인한 유효성과 안전성 톱라인 결과가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물에 녹지 않는 빌리루빈을 주사제로 만들고 원료를 화학적으로 합성하는 기술 확보가 강력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이는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실제 환자 치료로 이어질 수 있는 구체적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수상은 곧 해외 투자자와의 접점 확대를 의미합니다. 본선 진출 팀에게는 12월 미국 보스턴에서 열리는 '쇼난 헬스 이노베이션 콘퍼런스(SHIC) 2026' 참가 기회가 주어지며, 이곳에서 해외 투자자와 글로벌 제약사 CVC를 대상으로 일대일 미팅과 파트너링이 진행됩니다. 빌릭스는 이 자리를 발판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향후 기술이전 협상의 기반을 다질 계획입니다.

물에 녹지 않는 빌리루빈, 페길화 기술로 풀다
빌리루빈은 적혈구의 헤모글로빈이 분해될 때 생기는 색소로, 황달과 연관된 물질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 수십 년간 항산화 및 항염증 기능이 다양한 질병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는 연구가 이어졌지만, 신약 개발의 최대 장애물은 물성이었습니다. 물에 잘 녹지 않는 성분을 외부에서 안정적으로 투여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일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빌릭스의 출발점은 전상용 카이스트 교수의 '페길화(PEGylation) 빌리루빈' 기술입니다. 빌리루빈에 물과 친화적인 폴리에틸렌글리콜(PEG)을 결합해 수용액에서 친수성 부분이 바깥을 향하고 소수성 부분이 안쪽으로 모이도록 나노입자를 형성하는 방식이죠. 이 구조 덕분에 물에 녹지 않던 빌리루빈이 약물로 사용 가능해졌습니다. 김 대표는 2018년 유틸렉스를 퇴사한 후 지인을 통해 이 연구를 접했고, 같은 해 빌릭스를 공동 창업했습니다.

전합성 기술과 브릭셀, 임상 2a상 진행
약물화의 또 다른 과제는 원료의 품질과 공급 안정성 확보였습니다. 의약품으로 개발하려면 원하는 구조의 물질을 일정한 품질로 대량 생산할 수 있어야 하죠. 김 대표는 빌리루빈의 이성질체별 전합성 기술을 확보하고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고 설명하며, 자연에서 추출하는 것이 아니라 화학적으로 합성하여 품질과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합니다.
회사가 개발 중인 후보물질 '브릭셀(BRIXELLE, 개발코드 BX-001N)'은 화학적으로 합성한 '빌리루빈-3α'에 PEG를 결합한 형태입니다. 이 물질은 심장수술 관련 급성신손상 예방을 위해 현재 임상 2a상을 진행 중이며, 2027년 후속 데이터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 결과를 토대로 2028년 기술이전과 2029년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것이 회사의 중장기 전략입니다.
빌릭스는 현재 100억 원에서 150억 원 규모의 시리즈C 투자 유치도 진행 중입니다. 이 자금은 임상 진행과 글로벌 시장 진출의 중요한 동력이 될 것입니다. 빌리루빈의 항산화 및 항염증 기능을 신장 보호에 활용한다는 전략은 기존 치료제와 차별화된 접근법을 제시하며, 급성신손상이 심장수술 환자의 생존율과 삶의 질에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이 신약의 성공은 의료계 전반에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제약바이오 생태계의 글로벌 도약
빌릭스의 성과는 한국 바이오텍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입니다. 특히 일본이라는 제약 선진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점은 상징적 의미가 큽니다. 쇼난 아이파크는 2018년 다케다제약이 자사 연구시설을 외부 기업에 개방하면서 출범한 제약·바이오 중심의 연구개발 협력 단지이며, 이곳에서 인정받은 것은 기술의 완성도가 글로벌 표준에 부합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한국 기업들이 상위 3위를 모두 싹쓸이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프레이저테라퓨틱스와 큐로젠에 이어 빌릭스가 1위를 차지하며, 아시아 지역의 신약 개발 기술이 글로벌 제약사들의 관심을 받고 있음을 입증했죠. 이는 단순한 상금 획득을 넘어 향후 파트너십과 기술이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빌릭스는 2027년 임상 2a상 후속 데이터 확보를 통해 치료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확실히 입증할 계획입니다. 이후 2028년 기술이전과 2029년 IPO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 로드맵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한국 바이오텍의 글로벌 진출 사례로 기록될 것입니다. 빌리루빈이라는 자연 성분을 현대 바이오 기술로 재해석한 이 시도는 단순한 신약 개발을 넘어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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