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개발 리스크 회피를 위해 게임사들이 AI 기업과 검증된 해외 플랫폼을 인수하며 경영 노선을 급변경 중이다.
크래프톤이 장병규 의장 직속 조직에서 7년차 이상의 M&A 스페셜리스트를 채용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단순한 투자 부서가 아니다. 이 CNTD Dept라는 조직은 성장 잠재력이 높은 AI 기업을 찾아내어 투자하고, 인수합병을 통해 크래프톤의 기존 사업과 시너지를 내는 전략을 총괄한다. 단순히 게임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AI를 중장기 성장 동력으로 삼기 위해 기업 발굴부터 후속 투자, 협업, 사업 연계까지 포괄하는 거대한 움직임이다.
이 변화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6일 업계에 따르면, 게임업계의 성장 공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신작 개발에 드는 막대한 시간과 비용 부담, 그리고 출시 후에도 흥행을 장담하기 어려운 불확실성. 이 벽을 돌파하기 위해 게임사들은 검증된 사업 기반을 통째로 가져오는 M&A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더 나아가, 게임 개발에 투입되는 비용을 대폭 줄여줄 AI 기업까지 인수 대상으로 삼으며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검증된 해외 시장, 통째로 인수하다
카카오게임즈의 행보는 이 트렌드를 가장 잘 보여준다. 지난달 약 980억원을 투입해 미투온 지분 39.56%를 취득하며 경영권을 확보했다. 미투온은 소셜카지노, 캐주얼 게임, 마인드스포츠 등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북미,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기업이다. 카카오게임즈 입장에서는 새로운 장르의 게임 라인업은 물론, 해외 조직 및 이용자 기반, 현지 사업 역량까지 한꺼번에 확보하는 효과를 얻었다. 실제 미투온의 지난해 매출 중 해외 비중은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해외 시장 의존도가 높은 곳이다.
엔씨소프트의 움직임도 비슷하다. 지난 3월 독일 모바일 캐주얼 게임 플랫폼 기업 저스트플레이 지분 70%를 약 2억 200만 달러, 우리 돈 약 3,000억 원에 확보했다. 저스트플레이는 매출의 70%가 북미에서 발생할 만큼 북미 모바일 캐주얼 시장에 이미 뿌리내린 기업이다. 엔씨가 이 기업을 인수함으로써 북미 시장 진입에 필요한 사업 기반을 단숨에 구축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검증된 해외 시장과 IP를 직접 개발하는 대신 인수하는 방식이 게임업계의 새로운 표준이 되어가고 있다.

플랫폼과 생태계를 사들이는 전략
게임 개발사나 IP를 넘어서, 플랫폼 자체를 인수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넥써쓰는 지난 6월 SK스퀘어, 네이버, 스틸넘버원제일차, 크래프톤이 보유했던 원스토어 지분 84.63%를 약 626억 원에 인수했다. 이를 통해 넥써쓰는 자체 앱마켓과 결제, 콘텐츠 유통망을 확보하며 블록체인 게임 생태계 조성의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AI로 만든 게임 전용 'AI 게임즈' 탭을 신설하는 등 원스토어를 AI와 블록체인 기반의 게임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시동을 걸었다.
이러한 M&A의 배경에는 신작 개발의 불확실성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게임 개발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 부담은 갈수록 커지는데, 신작 출시 후에도 흥행을 장담하기 어렵다. 글로벌 이용자를 확보하고 해외 시장에서 서비스를 안착시키기까지도 추가 비용 소요가 불가피하다. 반면 M&A는 게임 개발에 필요한 역량을 단숨에 갖춰 시장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사들이 M&A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1인 개발자의 목소리, AI의 힘
대형 게임사들의 거대한 M&A 물결 속에서, 소규모 개발팀의 성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팬시스퀘어의 인디 게임 '미카엘 테스트'는 1인 개발임에도 상당한 완성도로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 게임은 죽기 직전에 다시 한번 기회를 얻은 주인공이 위태롭게 줄에 매달려서 명화 속 소리를 듣고 진실을 찾아내는 독특한 컨셉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AI 발전 덕분에 기획, 프로그래밍, 아트, 사운드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힘을 합치지 않아도 부족한 부분을 AI가 대신 채워줘서, 매력적인 아이디어가 있으면 소규모 팀에서도 완성도 높은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것이 배경이다.
팬시스퀘어는 '상상에 새로운 상상을 더하다'는 의미로, 동생과 함께 게임 개발을 시작했으나 현재는 혼자 개발을 하고 있다. 개발자는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하고 많이 즐기며 자랐으며, 그 시절 동생과 함께 게임을 하며 보냈던 시간들이 지금 게임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플레이한 시간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그런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것이 팬시스퀘어가 추구하는 방향과 목표이다.

명화와 소리, 그리고 진실을 찾아서
'미카엘 테스트'의 컨셉은 네덜란드 출신 플랑드르파의 대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칠죄종과 최후의 네 가지'에서 시작됐다. 이 그림에는 인간의 욕망, 죄, 그리고 뒤에 숨겨진 여러 이야기가 함께 담겨 있다는 점이 개발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같은 그림을 보고 있어도 사람마다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는 점을 발견했고, 그림을 해석하는 것 자체를 게임의 장치로 만들면 재미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 회화를 자세히 보다 보니 그림 속 사물들도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개발자는 움직이지 않는 평면의 그림이 플레이어에게 어떤 단서를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림은 결국 한순간을 멈춰 보여줄 뿐이니까. 그래서 눈으로 볼 수 없는 정보를 소리로 들려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바이노럴 사운드를 활용하게 됐다. 사람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소리가 어느 방향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지까지 단서로 만들면, 플레이어가 단순히 그림 앞에서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림 속 공간에 들어가 그 순간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미카엘의 시험, 죄와 구원의 경계
미카엘 테스트라는 제목은 성경에서 악마와 맞서 싸우는 대천사 미카엘에서 유래했다. 요한계시록 12장에서는 미카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 즉 사탄과 싸우는 장면이 나오고, 사탄은 인간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고발하는 '참소자'로 묘사된다. 이런 미카엘과 악마의 대립 구도가 게임의 세계관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게임의 주인공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죄로 인해 지옥의 문 앞에 서게 된 영혼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천사 미카엘이 그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려고 한다. 반대로 악마는 과연 이 영혼에게 그런 기회를 줄 자격이 있는지를 의심하고, 만약 자격이 없다면 그 이유를 찾아내려 한다. 플레이어는 이 대립 구도 속에서 그림 속 소리와 단서를 따라가며, 단순해 보였던 죄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진실에 도달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 그림을 봤을 때 내렸던 판단이 소리와 여러 단서를 하나씩 따라가면서 '내가 처음 본 것이 전부가 아니었구나'라고 느끼는 그 순간,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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