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SK하이닉스가 800조 원 규모 투자로 새 공장과 HBM 시설을 짓는다. 인공지능이 촉발한 메모리 수요 앞에서 한국이 던진 거대한 승부수를 차분히 들여다본다.
네 개의 새 공장
이번 계획의 핵심은 규모다. 두 회사는 각각 두 곳씩, 모두 네 개의 생산 공장을 한국 남서부에 새로 짓기로 했다. 인공지능이 촉발한 메모리 수요가 현재 공급을 계속 앞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라는 오래된 표현이 있지만, 지금은 그 쌀을 재배할 논 자체를 대대적으로 늘리는 국면이라 할 수 있다.
HBM을 둘러싼 경쟁
특히 뜨거운 전장은 고대역폭 메모리, 즉 HBM이다. 1분기 기준 SK하이닉스가 이 시장의 약 58퍼센트를 차지했고, 삼성과 미국의 마이크론이 각각 21퍼센트로 그 뒤를 이었다. 삼성은 올해 생산 능력을 약 50퍼센트 늘리려 하고, SK하이닉스는 인프라 투자를 기존 대비 네 배 이상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다.
다른 길을 택한 두 강자
흥미로운 점은 두 회사의 전략이 미묘하게 갈린다는 것이다. 삼성은 HBM의 뒤를 이을 기술로 연산 기능을 품은 메모리, 즉 PIM에 무게를 싣고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HBM을 계속 표준으로 굳혀 우위를 지키려 한다. 올해 핫칩스 무대에서 삼성은 LPDDR5X-PIM을, SK하이닉스는 iHBM을 각각 선보이며 그 방향성을 분명히 드러냈다.
칩을 넘어서는 그림
이 거대한 투자가 겨냥하는 것은 메모리 칩만이 아니다. 두 회사는 인공지능 로봇과 물리적 인공지능, 그리고 인공지능 데이터센터까지 함께 준비하고 있다. 메모리에서의 결정적 우위를 발판으로 삼아, 그 위에 세워질 더 넓은 생태계를 미리 그려 두는 셈이다. 나는 이 장기적 시야가 오히려 이번 계획의 진짜 무게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켜보려는 것
물론 발표된 숫자가 곧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 정도 규모의 투자는 수요가 예상만큼 이어질 때에만 빛을 발하며, 그렇지 못하면 무거운 짐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조심스러운 기대를 품는다. 한국이 잘하는 것을,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분야에 정면으로 베팅하는 모습에는 분명한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