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과 함께 시베리아에서 날아오는 큰고니는 한반도의 강 하구와 저수지를 겨울 안식처로 삼는다. 천연기념물로 지켜지는 이 새의 여정과 주요 월동지, 그리고 우리가 그 쉼터를 지켜야 하는 이유를 살펴본다.
해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한반도의 강과 저수지에는 먼 북쪽에서 날아온 하얀 손님들이 내려앉는다. 그 가운데에서도 우아한 목선을 지닌 큰고니는 우리 겨울 물가를 대표하는 철새로 손꼽힌다. 이 새가 어디에서 와서 어떻게 겨울을 나는지, 그리고 왜 우리가 이들을 지켜야 하는지 찬찬히 살펴본다.
겨울이 데려오는 하얀 손님
큰고니는 추운 계절에만 우리 곁을 찾아오는 대표적인 겨울 철새다. 봄과 여름을 시베리아와 몽골 북부의 넓은 습지에서 보내고, 그곳의 물이 얼어붙기 시작하면 따뜻한 남쪽을 향해 긴 여정을 떠난다. 그 머나먼 여정의 끝자락에 바로 한반도의 강 하구와 저수지가 놓여 있는 것이다.
큰고니는 어떤 새인가
큰고니는 몸 전체가 새하얀 깃털로 덮여 있고, 다 자라면 날개를 활짝 편 길이가 사람의 키를 훌쩍 넘길 만큼 커다란 새다. 무엇보다 부리의 노란색과 검은색이 뚜렷하게 나뉘어 있어, 부리의 끝부분만 검은 다른 고니류와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다. 물 위를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모습에서는 남다른 기품이 느껴진다.
시베리아에서 한반도까지

이 새들이 우리나라까지 찾아오는 길은 결코 짧지 않다. 번식지인 시베리아를 떠나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 중간중간 몸을 쉬어 가며 남쪽으로 천천히 내려온다. 대개 가족 단위로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습성이 있어, 그해 태어난 어린 새는 부모를 따라 처음으로 머나먼 겨울나기 길을 몸으로 익히게 된다.
큰고니가 찾는 겨울 물가
우리나라에서 큰고니는 주로 큰 강의 하구와 넓은 저수지, 그리고 간척지 일대에서 겨울을 난다.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와 창녕 우포늪, 부산의 낙동강 하구, 충남의 천수만과 금강 하구, 한강 하구와 팔당 일대 등이 이들이 즐겨 찾는 대표적인 월동지로 잘 알려져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킨다
국제적으로 보호가 필요한 진귀한 새인 만큼, 큰고니는 우리나라에서도 각별한 대접을 받는다. 고니류는 천연기념물 제201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큰고니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도 함께 보호받고 있다. 이 새를 함부로 잡거나 서식지를 훼손하는 일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숫자로 보는 큰고니
국내를 찾는 큰고니의 수는 결코 적지 않다. 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1월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난 큰고니는 약 9천 마리에 이르렀고, 이는 동아시아 전체 개체군의 약 16퍼센트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규모였다. 국내 월동 개체수는 최근 들어 해마다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로 전해진다.
주남저수지의 옛 명성
여러 철새 도래지 가운데에서도 주남저수지의 이름은 유독 특별하게 다가온다. 한반도 남부에 자리해 겨울에도 물이 얼어붙는 기간이 비교적 짧은 이곳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동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최대 규모의 겨울 철새 도래지로 명성을 떨쳤다. 지금도 겨울이면 수많은 탐조객이 이곳을 찾는다.
백조를 품은 우리 정서
새하얀 깃털에 길고 부드러운 목선을 지닌 고니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오래도록 우아함과 순수함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우리 정서 속에서도 고니는 맑고 고결한 새로 그려지며, 겨울 물가에 고요히 내려앉은 하얀 무리는 한 폭의 그림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곤 한다. 그 모습은 계절의 정취를 한층 깊게 만든다.
사라져 가는 겨울 서식지
그러나 큰고니의 겨울살이가 언제나 평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간척과 개발로 넓은 갯벌과 습지가 조금씩 줄어들고, 사람의 발길과 소음이 잦아지면서 새들이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먹이를 찾던 물가가 사라지면, 먼 길을 날아온 새들은 끝내 갈 곳을 잃고 만다.
함께 지켜야 할 이유
동아시아 개체군의 상당수가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만큼, 이들의 안전한 월동지를 지키는 일은 곧 국제적인 책임이기도 하다. 한 지역의 습지가 건강하게 유지되면 큰고니뿐 아니라 그곳을 함께 찾는 수많은 물새와 작은 생명들까지 더불어 살아갈 소중한 터전을 얻게 된다.
겨울 물가에서 만나는 법
탐조는 이 아름다운 새를 가까이에서 만나는 좋은 방법이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큰 소리를 내거나 무리에 바짝 다가가 새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먹이를 함부로 주는 일도 삼가고, 멀찍이 서서 조용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다시 봄을 향해 떠나기까지
겨우내 우리 물가에 머물던 큰고니는 날이 풀리고 얼음이 녹으면 다시 북쪽 번식지를 향해 힘차게 날아오른다. 짧다면 짧은 몇 달의 겨울 동행이지만, 이 하얀 손님들이 해마다 변함없이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의 쉼터를 지키는 일은 오롯이 우리에게 남겨진 몫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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