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을 둔하게 오가는 통통한 뒤영벌은 사실 꿀벌조차 못 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녔다. 꽃을 세차게 진동시켜 숨은 꽃가루를 털어내는 진동수분이다. 토마토와 고추, 블루베리를 길러 내는 이 숨은 일꾼과, 추위에도 나는 그 비밀을 들여다본다.
여름과 가을의 꽃밭에서, 통통하고 털이 복슬복슬한 커다란 벌 한 마리가 이 꽃 저 꽃을 둔하게 오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얼핏 보면 굼뜨고 어설퍼 보이지만, 이 벌은 사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꿀벌조차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재주를 하나 감추고 있다. 바로 꽃을 진동시켜 숨은 꽃가루를 털어내는 능력이다. 오늘은 이 통통한 일꾼, 뒤영벌의 세계로 한번 들어가 보자.
통통하고 털 많은 방문객
뒤영벌은 호박벌이라고도 불리는, 꿀벌과 가까운 친척이다. 하지만 날씬한 꿀벌과 달리 뒤영벌은 몸집이 훨씬 크고 둥글며, 온몸이 두툼한 털로 뒤덮여 있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이들도 여왕과 일벌이 함께 사는 사회성 곤충이지만, 꿀벌에 비하면 훨씬 작은 규모의 집단을 이루며 살아간다. 겉모습은 제법 우람해도 성격은 매우 온순해서, 좀처럼 사람을 먼저 쏘는 일이 없다.
우리나라의 꽃밭과 들판에서도 여러 종류의 뒤영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벌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복슬복슬한 털이다. 이 털은 추운 날씨에 몸의 온기를 지켜 줄 뿐만 아니라, 꽃을 오갈 때 몸에 엄청난 양의 꽃가루를 묻혀 나르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뒤영벌은 그 자체로 매우 훌륭하고 부지런한 꽃가루 운반꾼이 되어 준다.
추위에도 나는 비행사
뒤영벌의 또 다른 놀라운 점은, 다른 곤충들이 추워서 꼼짝도 못 할 때에조차 씩씩하게 날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뒤영벌은 날기 전에 비행 근육을 빠르게 떨어 스스로 몸을 데우는데, 이 덕분에 쌀쌀한 날씨에도 체온을 끌어올려 활동할 수 있다. 그래서 이른 봄에 가장 먼저 나타나는 벌 가운데 하나이자, 늦가을까지 가장 오래 남아 꽃을 찾는 벌이기도 하다.
이처럼 추위에 강한 성질은 뒤영벌을 서늘한 지역이나 높은 산지에서 특히 중요한 꽃가루받이 일꾼으로 만들어 준다. 다른 벌들이 나오기 힘든 이른 봄이나 흐리고 추운 날에도, 뒤영벌은 부지런히 꽃 사이를 누비며 수분을 돕는다. 만약 이 든든한 일꾼이 없다면, 많은 식물들이 제때 꽃가루받이를 하지 못해 열매를 맺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꿀벌이 못 하는 특별한 재주, 진동수분

그러나 뒤영벌이 가진 진짜 비장의 무기는 따로 있으니, 바로 진동수분이라 불리는 특별한 능력이다. 토마토와 고추, 블루베리, 가지 같은 일부 식물들은 꽃가루를 대롱처럼 생긴 꽃밥 속에 꼭꼭 가두어 두고, 오직 강한 진동이 가해질 때에만 비로소 그것을 밖으로 털어낸다. 뒤영벌은 바로 이 단단한 자물쇠를 여는 열쇠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뒤영벌은 이런 꽃에 매달린 채, 날개는 움직이지 않으면서 비행 근육만을 세차게 진동시킨다. 그러면 그 떨림이 꽃 전체로 전해져, 안에 숨어 있던 꽃가루가 마치 소금통을 흔들 때처럼 우수수 쏟아져 나온다. 놀랍게도 우리에게 익숙한 꿀벌은 이런 진동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에, 토마토나 고추, 블루베리 같은 작물의 꽃가루받이에는 그다지 쓸모가 없다.
온실 속의 일꾼
이 특별한 능력 덕분에 뒤영벌은 오늘날 농업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곳곳의 온실에서는, 상자에 담긴 뒤영벌 무리를 풀어놓아 토마토와 고추 같은 작물의 꽃가루받이를 맡긴다. 예전에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하던 그 고된 일을, 이제는 이 작은 벌들이 훨씬 효율적으로 대신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뒤영벌은 전 세계적으로 백 가지가 넘는 작물의 수분에 활용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신선한 토마토와 고추의 상당수가, 알고 보면 이 통통한 벌들의 보이지 않는 수고 덕분에 우리 식탁에 오르는 셈이다. 이렇게 뒤영벌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우리의 먹거리를 든든하게 떠받치는 숨은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사라지면 안 되는 친구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른 많은 곤충들처럼 뒤영벌 역시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있다. 지나친 농약 사용과 서식지의 감소, 그리고 기후변화가 이 부지런한 벌들을 한꺼번에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뒤영벌이 사라진다면, 진동수분에 기대어 열매를 맺는 수많은 작물과 야생 식물들이 함께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뒤영벌을 지키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의 식탁과 자연의 건강을 함께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밭에서 기르는 뒤영벌뿐만 아니라, 들과 산에서 살아가는 야생 뒤영벌 역시 똑같이 소중히 여겨야 한다. 이 작은 벌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꽃 가득한 환경을 지켜 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보답일 것이다.
작지만 큰 존재
그러니 올가을, 늦게까지 핀 꽃 위에서 둔하게 붕붕거리는 뒤영벌 한 마리를 보게 된다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봐 주면 어떨까. 어쩌면 그 벌은 홀로 겨울을 나고 이듬해 새 가족을 이룰 미래의 여왕일지도 모른다. 그 작은 날갯짓과 붕붕거리는 떨림 속에는, 우리의 먹거리를 지탱하는 놀랍도록 커다란 힘이 담겨 있다.
이 통통하고 부지런한 벌을 돕는 방법은 생각보다 그리 어렵지 않다. 정원과 밭의 가장자리에 다양한 꽃을 심고, 농약 사용을 줄이며, 이들이 편히 쉬고 번식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공간을 조금 남겨 두기만 하면 된다. 그런 작은 배려가 차곡차곡 쌓일 때, 뒤영벌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우리 곁에서 꽃을 흔들며 세상을 풍요롭게 채워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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