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줄을 전혀 만들지 않는 거미가 있다. 바로 게거미다. 게를 닮은 이 거미는 꽃과 잎에 몸을 숨긴 채 완벽하게 위장하고, 다가오는 곤충을 앞다리로 순식간에 덮친다. 때로는 자기보다 큰 벌과 나비까지 잡고, 해충도 조절하는 작지만 든든한 매복형 사냥꾼의 이야기.
거미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나뭇가지 사이에 촘촘한 거미줄을 치고 먹이가 걸리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세상에는 거미줄을 전혀 만들지 않는 거미도 있다. 바로 게거미다. 게거미는 꽃과 잎에 조용히 몸을 숨긴 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먹이를 사냥하는 매우 흥미로운 사냥꾼이다.
거미줄 없이 사냥하는 거미
이름 그대로 게거미는 게를 쏙 빼닮은 거미다. 몸이 납작하고 옆으로 잘 걸어 다니며, 앞쪽의 두 쌍 다리를 마치 게의 집게처럼 양옆으로 벌리고 있는 모습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독특하고 재미있는 생김새 덕분에 한 번 보면 좀처럼 잊기 어려운 거미이기도 하다.
게거미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많은 거미들과 달리 거미줄을 아예 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대신 게거미는 풀잎이나 꽃잎 위에서 가만히 기다리다가, 먹잇감이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 순식간에 덮치는 매복형 사냥을 한다. 움직임이 느린 만큼, 오로지 인내심으로 승부하는 셈이다.
꽃 위의 완벽한 위장
게거미가 이런 매복 사냥에 번번이 성공하는 비결은 바로 뛰어난 위장 능력에 있다. 많은 게거미는 풀처럼 초록색을 띠거나 분홍색을 띠기도 하며, 심지어 꽃의 모양 자체를 흉내 내는 종류까지 있다. 덕분에 꽃이나 잎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좀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이러한 위장과 의태 능력은 다른 거미들에 비해 유난히 잘 발달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종은 제법 긴 시간을 두고 자기 몸의 색깔을 주변 꽃의 색에 맞추어 서서히 바꾸기까지 한다. 사냥감의 눈에는 게거미가 그저 한 송이 꽃의 일부처럼 보일 뿐이니, 감쪽같은 속임수다.
방심한 손님을 노린다

꽃은 벌과 나비를 비롯한 수많은 곤충들이 달콤한 꿀과 꽃가루를 찾아 끊임없이 모여드는 장소다. 게거미는 바로 이 점을 교묘하게 노린다. 꽃잎 사이에 몸을 숨긴 채 미동도 없이 기다리다가, 꿀에 정신이 팔린 손님이 가까이 다가오는 결정적인 순간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먹이가 사정거리 안에 완전히 들어오면 게거미는 그동안 넓게 벌려 두었던 앞다리로 순식간에 먹이를 와락 움켜쥔다. 놀랍게도 게거미는 때때로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큰 벌이나 나비까지도 제압하는데, 강한 앞다리와 독이 바로 이 대담한 사냥을 가능하게 해 준다.
작지만 든든한 해충 사냥꾼
게거미는 단순히 꽃을 찾아온 곤충만을 잡아먹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리저리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나방의 애벌레나 잎벌레, 벼멸구, 매미충처럼 농작물에 실질적인 해를 끼치는 곤충들도 즐겨 잡아먹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충의 수를 조절해 주는 역할까지 한다.
심지어 작물의 잎을 갉아먹는 이십팔점박이무당벌레 같은 골치 아픈 해충까지도 게거미의 훌륭한 먹잇감이 된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주 작은 몸집이지만, 게거미는 밭과 들에서 조용히 자기 몫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참으로 든든한 사냥꾼인 셈이다.
우리 곁의 다양한 게거미
게거미는 사실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다. 크기가 아주 작은 종부터 제법 큰 종까지, 몸의 색과 무늬도 저마다 달라서 초록, 노랑, 분홍, 흰색 등 서식하는 환경에 따라 무척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 준다. 우리나라의 꽃밭과 풀숲에서도 여러 종의 게거미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대체로 암컷이 수컷보다 몸집이 훨씬 큰 편이며, 알을 낳은 뒤에는 잎을 살짝 말거나 약간의 실을 이용해 알주머니를 만들어 정성껏 지키기도 한다. 게거미는 먹이를 잡는 그물은 치지 않지만, 이렇게 소량의 실만큼은 알을 보호하거나 몸을 지탱하는 데 요긴하게 활용하는 셈이다.
자연이 만든 작은 예술
꽃과 똑같은 색으로 제 몸을 물들이고, 거미줄 하나 없이 오직 인내와 위장만으로 사냥에 나서는 게거미의 모습은 마치 자연이 오랜 세월에 걸쳐 빚어낸 작은 예술 작품과도 같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안에는 기나긴 진화가 만들어 낸 놀라운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음에 들판이나 정원에서 활짝 핀 꽃을 마주하게 되거든, 꽃잎 사이를 한 번쯤 천천히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어쩌면 바로 그곳에는 꽃인 척 시치미를 떼고 몸을 숨긴 작은 게거미가, 다음 손님이 찾아오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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