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alw
NATURE · KR

다시 찾아오는 기러기: 가을 하늘을 건너오는 신뢰의 새

오서연 오서연 seoyeonoh.avalw.com · 580 reads Respect0 Save Share Read only
READS3live count PUBLISHED17 Sept2026 READING TIME4 min704 words LANGUAGEKorean
AI CITATIONS? Gathering data

가을이 깊어지면 한국의 하늘에 브이자 대형을 그리며 기러기 떼가 돌아온다. 시베리아에서 날아오는 이 겨울 철새는 평생 짝을 바꾸지 않아, 예부터 사랑과 신뢰의 상징으로 여겨졌고 전통 혼례의 목기러기로도 남았다. 기러기의 생태와 문화, 그리고 이들이 머무는 습지 이야기를 담았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해지고 가을이 깊어 가면, 한국의 하늘에는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손님들이 나타난다. 길게 줄을 지어 브이자 대형을 그리며 날아오는 기러기 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기러기는 단순히 계절을 따라 오가는 철새가 아니라, 오랜 세월 우리 문화 속에서 사랑과 신뢰의 상징으로 여겨져 온 아주 특별한 새이기도 하다. 올가을에도 그들은 어김없이 우리 곁을 찾아온다.

가을 하늘의 나그네

기러기는 대표적인 겨울 철새로, 봄이 되면 저 멀리 북쪽의 시베리아 툰드라 지역으로 날아가 번식을 하고, 날이 추워지는 가을이 되면 다시 따뜻한 한반도로 내려온다. 특히 큰기러기는 대개 시월 초부터 도래하기 시작해, 이듬해 삼월 초가 되면 대부분 우리 곁을 떠난다고 한다. 한국에는 큰기러기와 쇠기러기, 개리, 회색기러기를 비롯해 모두 일곱 종에 이르는 기러기가 찾아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러기가 걸어온 여정은 실로 놀랍다. 수천 킬로미터에 이르는 먼 길을, 이 새들은 무리를 지어 함께 날아서 건너온다. 특히 여러 마리가 브이자 모양으로 줄을 맞추어 나는 모습은, 기러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밤하늘 어딘가에서 끼룩끼룩 우는 소리가 들려오면, 우리는 굳이 고개를 들지 않고도 기러기가 지나가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천 년을 이어온 사랑의 새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기러기에게 사랑과 의리, 그리고 신뢰라는 소중한 가치를 담아 왔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기러기는 한번 짝을 정하면 좀처럼 그 짝을 바꾸지 않고, 설령 짝이 먼저 세상을 떠나더라도 다른 짝을 새로 맞이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습성 때문에 기러기는 변치 않는 부부의 정을 상징하는 새로 오래도록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상징성은 우리의 전통 혼례 속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전통 혼례의 첫 순서인 전안례에서는, 신랑이 신부의 집에 들어가 신부 측 어른에게 기러기를 전하는 의식을 치른다. 물론 살아 있는 새를 대신하여, 나무를 깎아 만든 목기러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기러기처럼 평생 변치 않는 사랑과 믿음으로 살아가겠다는 두 사람의 다짐을 담은, 참으로 아름다운 약속이었다.

무리의 지혜

기러기 두 마리가 나란히 하늘을 가르며 날고 있다. 여러 마리가 줄을 지어 나는 특유의 대형은 서로의 힘을 아껴 주는, 기러기 무리만의 지혜가 담긴 모습이다.
기러기 두 마리가 나란히 하늘을 가르며 날고 있다. 여러 마리가 줄을 지어 나는 특유의 대형은 서로의 힘을 아껴 주는, 기러기 무리만의 지혜가 담긴 모습이다.

기러기가 브이자 대형을 이루어 나는 데에는 놀라운 지혜가 숨어 있다. 앞서 나는 새가 공기를 가르며 만들어 내는 흐름을 뒤따르는 새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무리 전체가 훨씬 적은 힘으로 먼 거리를 날 수 있다. 게다가 맨 앞에서 바람을 맞으며 힘겹게 길을 여는 역할은 어느 한 마리가 도맡는 것이 아니라, 여러 마리가 번갈아 가며 나누어 맡는다고 한다.

무리를 지어 나는 동안 기러기들은 끊임없이 서로에게 소리를 내어 격려하며, 지친 동료가 뒤처지지 않도록 서로를 살핀다. 또한 기러기는 가족 단위로 함께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 부모와 새끼가 그 긴 여정을 나란히 이겨 낸다. 자녀 교육을 위해 가족과 멀리 떨어져 지내는 아버지를 가리키는 기러기 아빠라는 말도, 바로 이런 기러기의 모습에서 비롯된 정겨운 표현이다.

기러기가 내려앉는 땅

먼 길을 날아온 기러기들에게 한반도는 더없이 소중한 겨울 보금자리가 되어 준다. 특히 큰기러기는 한강과 임진강 하구, 철원 들녘, 천수만, 그리고 금강 하구처럼 중부 지방과 서해안의 너른 습지와 들판을 중심으로 무리를 이루어 겨울을 난다. 이런 곳들은 기러기뿐 아니라 수많은 물새들이 함께 기대어 살아가는, 생명으로 가득한 귀한 공간이다.

기러기들이 이런 지역을 즐겨 찾는 데에는 먹이도 큰 몫을 한다. 추수가 끝난 논에는 미처 거두지 못한 낱알들이 떨어져 있어, 기러기들에게 더없이 좋은 먹이터가 되어 준다. 낮에는 이렇게 들판에서 배를 채우고, 밤이 되면 다시 안전한 물가로 돌아가 몸을 쉬는 것이 이들의 하루다. 사람의 농사와 기러기의 삶이 이렇게 조용히 서로 이어져 있는 셈이다.

위협받는 겨울 손님

하지만 이 반가운 겨울 손님들의 앞날이 마냥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습지가 메워지고 곳곳에서 개발이 이어지면서, 기러기들이 안심하고 쉬며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실제로 우리를 찾아오는 기러기 가운데 개리나 흰이마기러기처럼 그 수가 크게 줄어 보호가 필요한 종들도 있어, 한층 세심한 관심이 요구되고 있다.

결국 기러기를 지키는 일은 그들이 겨울을 나는 습지와 들판을 함께 지키는 일과 떼려야 뗄 수 없다. 하나의 습지가 사라진다는 것은, 대륙을 가로질러 날아온 수많은 새들에게 소중한 쉼터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과 같다. 기러기가 해마다 변함없이 우리 하늘을 찾아오도록 하려면, 이들이 머무는 땅을 소중히 가꾸려는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다시 만나는 계절

기러기가 돌아온다는 것은, 곧 또 한 번의 가을과 겨울이 우리 곁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반가운 신호이기도 하다. 예전 사람들은 남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며 멀리 있는 그리운 이를 떠올렸고, 때로는 편지를 대신 전해 줄 사자로 여기기도 했다. 그만큼 기러기는 오랜 세월 우리의 정서와 삶에 가까이 자리해 온, 친숙하고도 각별한 새였다.

그러니 올가을, 문득 하늘에서 끼룩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거든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보면 어떨까. 줄을 지어 부지런히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계절의 흐름과 자연의 질서를 새삼 마음속 깊이 느낄 수 있다. 아이와 함께 그 모습을 나란히 바라본다면, 그 자체로 더없이 훌륭한 자연 수업이 될 것이다.

하늘이 전하는 편지

먼 북쪽 툰드라에서 출발해 우리 하늘까지 날아온 기러기는, 어쩌면 해마다 자연이 우리에게 보내오는 한 통의 편지인지도 모른다. 그 편지 속에는 변치 않는 사랑과 믿음, 그리고 어김없이 다시 돌아오는 계절의 약속이 고이 담겨 있다. 올겨울에도 우리 들녘을 찾아올 기러기들을 위해, 그들이 편히 쉬어 갈 땅을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 주기를 바라 본다.

0 responses
No responses yet. Be the first to add one.
오서연
Follow this desk
오서연
Create a free account to follow 오서연. New stories land in your feed, and you can save any of them to your own reading lists.
Your library & lists →
오서연
WRITTEN BY THE AUTHOR
오서연 2026-09-17 · 4 min read · 3 reads
View profile →
VERIFY THIS STORY
ASK AI
오서연 Keep following 오서연Her next filing reaches you the moment it publishes, on her own subdomain.
Up next
More
Statistics Search Become a creator Alliances About Terms Privacy